우리가 흔히 아는 고전의 이야기를 지금의 시점으로 재해석을 하여 전복을 꾀하는 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대부분의 재해석이라는 것이 현재의 관점을 투사시키는 것이 큰 요인일 터.
춘향은 모두가 알다시피 양반 신분이 아니다. 즉 몽룡이와는 계급이 다르다. 텍스트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시선을 빼앗겨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했었나보다. <방자전>은 모두가 무시하고 있었던 분명한 사실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통해 전복을 꾀한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고들 하는데 정말 그렇게 아름답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을까? 행여나 의도적으로 은폐된 것이 있지는 않을까?
<방자전>은 계급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에 계급은 엄연히 있고 그 경계를 뛰어 넘으려는 욕망은 당연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원작 <춘향전>을 독해함에 있어서 간과되었던 계급의 문제를 지금에 와서 다시 부각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이제는 너무나 진부하게만 들리는, 그래서 현실에서 마냥 공허하게만 들리는 말인 계급을 굳이 드러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감독이 이전에 연출했던 <음란서생>과 이번의 <방자전>의, 여기저기에 장치된 개그코드들은 충분히 매니아적이라 할 수 있다. 고개를 조금만 기울이고 의심해보면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코드들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방자전>의 전복 방식 또한 네티즌틱(?)한 맥락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방자전>으로 돌아가면, 춘향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한 모습이다. 뛰어난 미모를 통해서, 출중한 기예를 통해서 좋은 집안의 남자를 유혹하여 신분상승을 노리는 여자이지만 자신을 기녀라고 무시하는 이들에 대해서 반감이 대단하다. 이러한 춘향을 대하는 방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허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춘향의 계급상승 욕망을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된장기질을 돕기 위해 살신성인의 각오로 지원사격을 한다. 그리고 그런 한편으로 춘향을 향한 몽룡의 태도에 악감정을 갖는다. 즉 된장녀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인터넷상의 그것과 비슷한데, 오로지 외적 기준을 통해서 세상을 편하게 살려하고 최종적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여인네에 대한 이중적 감정을 방자가 보여준다. 다른 것이 있다면 비난의 방향만 다를 뿐.
더보기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악마를 보았다> - 상대적 공포감 (0) | 2010/08/30 |
|---|---|
| 천사의 사랑; 공유된 기억이 상실된다면? (9) | 2010/07/02 |
| <방자전> (4) | 2010/06/11 |
| 성미산 마을숲 (2) | 2010/06/10 |
| 2010 602 지방선거 후기 (0) | 2010/06/08 |
| Is this the H-logic? (0) | 2010/05/31 |



